[기고] '8톤 쓰레기'와 살던 위기 가정, '새보금자리' 기적이
상태바
[기고] '8톤 쓰레기'와 살던 위기 가정, '새보금자리' 기적이
  • 허형채
  • 승인 2023.06.14 11: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허형채 광양읍지역사회보장협의체 민간위원장
저장강박증 환자, 조례 제정해 지속적 관리해야
허형채 광양읍지역사회보장협의체 민간위원장
허형채 광양읍지역사회보장협의체 민간위원장

최근 저장강박증 환자가 늘면서 새로운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저장강박증'이란 강박장애의 일종으로 어떤 물건이든지 집 안에 계속 쌓아두고, 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무엇이든 버리지 못하고 무조건 저장하는 강박장애 증세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불편하고 불안한 감정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심지어 밖에 있는 쓰레기도 집으로 끌고 들어와서 쌓아 둔다고 한다.

우리는 TV에서 종종 '쓰레기집'이라며 믿을 수 없는 광경의 방송을 볼 때가 있다. 발 디딜 틈 하나 없이 온갖 잡동사니와 쓰레기로 뒤덮인 집이다. 더 놀라운 것은 몸 하나 누워서 잘 수 있는 공간이 없을 것 같은 이른바 쓰레기집 문제를 TV에서만 보왔지 우리주변에 이런 주택이 있었다는 현실에 마음이 아팠다

최근 저장강박증이 의심되는 지적장애 부부가 거주하는 광양 모 아파트를 광양읍 지역사회보장협의체에서 이들의 집 청소를 해줬다. 광양읍 지역사회보장협의체는 2021년부터 ‘사회단체와 함께하는 홈-클린데이’의 일환으로 취약계층 주거환경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번에 이 가정이 선정된 것이다. 

2022년부터 주변 이웃들이 악취 등 불쾌한 냄새를 느끼고 민원을 제기하면서 쓰레기를 쌓아두고 사는 이들 부부의 실체가 드러났다. 광양읍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및 맞춤형복지팀 직원들은 수차례 찾아다니면서 주거청소를 하자고 설득하였으나 외부 도움을 거절한 채 현관문을 자물쇠로 잠겨 두고 집안에서 버티고 있었다.

해당 가정에 방치된 쓰레기
해당 가정에 방치된 쓰레기

당사자의 허락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는 지자체도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날 이들 부부는 남편 팔 주변의 화상을 있었고, 부인은 몸이 아픈 상태에서 인근 병원에 입원하여 집으로부터 분리된 상태에서 A씨 부인 남동생의 도움과 설득으로 주거청소를 허락받았다.

엘리베이트가 없는 고층의 청소작업은 인력으로 불가능하여 사다리차를 임대하여 치우기 시작했다. 집 안은 통행이 불가능했다. 입구부터 쓰레기가 가득차 있어 넘어지지 않도록 중심을 잡으며 들어가야 했다. 방안을 빼곡하게 메운 쓰레기에 발 디딜 틈이 없고, 거실은 온갖 음식물쓰레기와 곰팡이로 악취를 풍겼다. 또한 정체를 알 수 없는 박스와 쓰레기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바닥에 가득한 쓰레기 위로 또 다른 쓰레기들이 천장에 닿을 듯 쌓여 있었다.

이번 대상지는 전문인력과 장비가 필요하여 꾸준히 후원하는 전문 청소업체와 진행하였다. 쓰레기는 코를 찌를 듯한 냄새를 불러왔고, 방 주변에서는 바퀴벌레가 다니고, 물건을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그 사이에서 벌레들이 날아들거나 떨어졌다. 이곳에서 지적장애부부는 밥을 먹고 잠을 청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또한 이불과 배게에는 곰팡이가 피어있었다.

전문가 설명을 들어보면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가족과 떨어져 살아 사회적으로 고립 된 사람이거나 지적장애가 있는 분들에게 주로 나타난다고 한다. 이어 남들이 보기에는 쓰레기지만 손씨 부부에게는 보물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물건에 대한 가치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에게는 소중한 것을 누군가 빼앗으려고 하니 저장강박은 자신의 소유물을 버리면 큰일이 벌어진다는 불안으로 인해 나타난다고 한다.

6월 중순이지만 찌는 듯한 날씨속에서 이른 아침부터 폐기물 수거와 쓰레기는 약 8톤 정도 처리하면서 소독.방역도 시행해 청결한 주거환경으로 탈바꿈 시켰다. 지역사회보장협의체와 직원들은 깨끗이 정리된 주거지에 광양제철소 도배재능 봉사단의 도움을 요청해 도배 및 장판교환, 다용도실 페인팅 등 주거환경을 개선하여 지적장애 부부가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봉사할동을 펼쳤다.

쓰레기 한번 청소한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한번 치워도 쓰레기 적치가 반복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이런 현상의 재발을 막으려면 쓰레기를 치우는 습관 형성을 돕고 심리 상담과 사후 사례 관리가 뒤따라야 한다. 산더미같이 쌓인 쓰레기는 사회관계를 단절한 이들이 보내는 일종의 조난신호로 받아들여야 하며, 궁극적으로 끊어진 사회관계망을 이어 삶을 바꾸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봉사자들이 대형 장비를 동원해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
봉사자들이 사다리차를 동원해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어려운 점은 있다. 대상자가 청소를 거부하는 경우다. 주택이 사유재산이기 때문에 본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청소를 해주거나 상담을 하는 등 손을 쓸 수 있는 방법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이다. 

필자가 해마다 취약계층 5~6가구 정도 주거 청소를 하면서 느낀점은 읍면동 차원이 아닌 광양시 담당부서에서 전수조사를 통해 상황을 집중적으로 파악한 뒤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외계층 저장 강박의심 가구의 생활안정과 건강관리를 위해 '저장강박 의심가구 지원에 관한 조례' 발의해 비위생적이고 위험한 주거환경에 거주하는 주민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주민의 건강과 복리증진에 이바지하여야 한다고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