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나의 익신마을 설명서4…이야기가 반짝이는 익신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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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나의 익신마을 설명서4…이야기가 반짝이는 익신마을
  • 최난영
  • 승인 2022.08.31 0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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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의 형태를 띤 '익신마을'
갑오농민전쟁서 피어난 익신사람들의 기개

‘나의 익신마을 설명서’는 소설과 스토리텔링 작업을 하는 최난영 작가가 지난 5월부터 오는 10월까지 ‘전남 예술로 파견사업’을 통해 광양시 광양읍 익신리에 위치한 ‘익신마을’에서 활동한 내용을 총 8회에 걸쳐 기록‧연재합니다. 네 번째 주제는 ‘이야기가 반짝이는 익신마을’입니다. <편집자 주>

주문한 짜장면이 테이블 위에 놓이자, 고춧가루가 든 작은 병을 집었다. 번들거리는 양념 위에 그것을 몇 번 흔들어 뿌렸다. 이어 맞은편에 앉아있는 지인에게도 그것을 건넸다. 그도 나처럼 했다. 이것은 오로지 그의 취향이었으나, 이제는 나의 취향이기도 하다. 티스푼 반개 분량의 고춧가루는 위대한 힘을 냈다.

타지역에 사는 지인이 얼마 전 광양을 방문했다. 순천 역에 도착한 그를 픽업해 광양으로 넘어오니,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때였다. 브레이크 타임 없는 중화요리 집을 첫 행선지로 삼았다. 그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으나 전라도 예찬이 남다른 인물이다. 이십 대를 전라도에서 보낸 것이 이유라면 이유였다. 광양 방문은 벌써 세 번째다. 이미 명소라는 명소는 꿰고 있으므로, 식사 내내 다음 행선지 고민은 숙제였다.

면치기에 집중하는 내게 그가 말했다.
 “광양 사람은 고춧가루 서 말 먹고도 뻘(펄) 속 삼 십 리를 기어간다며.”
광양, 하면 따라붙는 그 말! 나도 듣긴 들었다. 하지만 그뿐이지 어디서 비롯됐는지 왜 그런 말이 생겨났는지 그 연유는 몰랐다. 가만히 고개만 끄덕이다 짜장면에 고춧가루를 더 추가했다. 지인은 어디선가 읽은 적 있다며 이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나는 양념이 고루 묻게 면발을 뒤섞으며, 그 이야기를 경청했다.

독립운동을 하던 광양의 한 청년이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고문으로 고춧가루 서 말을 먹였다고 한다. 물론 곱게 입으로만 먹인 것은 아닌 듯했다. 그 청년은 결국 실신하고 말았는데, 밤중이 다돼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청년은 감시가 느슨해진 틈을 타 여천에서 초남까지 삼십 여리나 되는 갯벌을 기어 탈출에 성공했다.

실화를 토대로 한 스토리텔링인지, 오로지 허구에만 기댄 것인지 확인할 길은 없으나, 그렇다 했다. 어찌됐건 광양인의 강인한 정신력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화끈한 맛은 찾기 힘들 것이다. 나도 질 새라 광양에 떠도는 매운맛 설화 하나를 꺼냈다. 익신 마을에서 활동하며 알게 된  ‘한군협(韓郡俠)’이라는 인물에 관한 것이었다.

“순천의 산 사람 셋이 광양의 송장 하나 못 해본다. 그 광양 송장이 바로 익신마을 출신이다.”

광양읍 익신마을 출신 한군협(사곡접주)은 조선말 갑오농민전쟁 때 활약했다. 그 일로 체포돼 사형당할 처지에 놓였으나 그의 기개는 꺾일 줄 몰랐다. 결국 형장에서 목이 베였다. 끝인 듯 보이나, 이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바닥에 떨어진 그의 머리가 다시 제자리로 올라붙었으며, 관원들에게 호통까지 쳤다. 그리고 본격적인 매운맛으로 진격한다.

그는 여수와 구례, 순천 등지에 사는 친구들에게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고 술 내기를 했다. (처형 당시 벌어진 그 괴이한 일 때문에, 시신을 화형 시켰다는 말도 있다.) 그 어떤 좀비 영화에 견주어도 뒤처지지 않는다.

어쨌든 그는 친구들과 만나 술을 마셨다. 그도 모자라 술에 취해 뻗은 친구들을 대신해 술값까지 치르고 사라졌다는 것이다. 뒤늦게야 친구들은 그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을 알았다. 이러한 설화를 바탕으로 ‘순천 산 사람 셋이 광양 송장 하나 못 해본다.’라는 말이 생겨났다.

짜장면 한 그릇을 말끔히 비우고, 이야기를 든든히 채운 채 식당을 나섰다. 지인은 그 어느 때보다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보조석에 올라탔다. 차를 몰아 설화에 등장하는 곳으로 안내했다. 제철로를 따라 익신리에서 초남리까지 드라이브하기로 한 것이다.

익신리와 초남리를 잇는 제철로
익신리와 초남리를 잇는 제철로

익신마을 근처에 당도하자, 나는 가이드라도 되는 양 “지금 지나는 도로는 활줄에 해당하는 곳이며, 저 앞의 익신회관은 줌통 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지인은 그것이 무슨 뜻이냐고 재촉하면서도 ‘익신 슈퍼’를 발견하고 반겼다. 내 개인 SNS에 스크랩해둔 연재 기사를 읽었다고 했다.

익신마을을 두고 궁형(弓形)이라고 하는데, 이는 마을의 지세가 활의 형태를 띠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을 앞 도로는 ‘활줄’에 해당하고, 마을의 모습은 고스란히 ‘활’이 되며, 마을회관은 ‘활줌통’이 되는 것이다. 마을 뒷산에는 ‘호랑이 바위’가 있는데, 이를 향해 활을 당기는 형상이다.

호랑이 바위까지 가는 길은 현재 풀이 솟아 직접 확인할 수 없어 아쉽다. 그 위치만 대략 마을 분들을 통해 들었을 뿐이다. 그 추억과 함께 말이다. 어린 시절 백중날이 되면 학교에서 단체로 바위에 갔다고 했다. 도시락을 싸가서 그곳에서 먹고 놀다 내려온 기억이 있다고 덧붙였다.

몇 달 동안 마을을 오가면서 알게 된 것들이 꽤 생겼다. 그래서인지 익신마을에 대한 설명을 잇는 내 목소리에도 힘이 붙었다. 나는 마을의 둠벙 이야기도 들려줘야만 했다.

한때 광양은 전남 최대 금 생산지였다. 지금은 폐광되었으나 인근에 초남 금광과 본정 금광이 자리했다. 일제 강점기부터 금 채굴이 성행하기 시작했다. 이런 이유로 한때 익신마을 주민 중에도 광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제는 도로가 나고 산단이 들어서 그 형태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마을 바로 앞에는 사금을 채취했던 둠벙(웅덩이)도 여러 개 존재했다.

내 이야기에 한껏 취한 지인이 “익신마을이 사금이네. 커다란 금덩어리는 아니지만 작고 반짝이는 광양의 역사와 이야기가 여전히 지천으로 널려있구나.”라며 감탄했다.

초남리로 향하는 차 안에서도 내내 익신마을에 대해 생각했다. 아직 미처 찾아보지 못하고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을 것이다. 그것들이 세상에 드러나 빛을 발하도록 남은 기간을 보태야겠다고 다짐했다. 직접 패닝 접시(사금 채취도구)가 되어 익신마을이라는 ‘이야기 둠벙’에 관심을 담가볼 참이다.

* 최난영 작가
대학과 대학원에서 문예창작학을 전공했다. 단편소설 「울어요,제발」로 제2회 김승옥문학상 신인우수상을, 「쿠오바디스」로 제6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에서 단편부분 우수상을 수상했으며, 부산국제영화제 북투필름에 선정, 「행운을빌어요」로 고즈넉이엔티 메타버스 장르소설 공모전 단편소설부문을 수상했다. 산문집 「블라블라블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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