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나의 익신 마을 설명서1…익신마을이 어디에요?
상태바
[연재]나의 익신 마을 설명서1…익신마을이 어디에요?
  • 최난영
  • 승인 2022.07.14 16: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과 함께 기록한 광양읍 익신마을과 주민들, 그리고 역사

‘나의 익신마을 설명서’는 소설과 스토리텔링 작업을 하는 최난영 작가가 지난 5월부터 오는 10월까지 ‘전남 예술로 파견사업’을 통해 광양시 광양읍 익신리에 위치한 ‘익신마을’에서 활동한 내용을 총 8회에 걸쳐 기록‧연재합니다. 첫번째 주제는 '익신마을이 어디에요?' 입니다.<편집자 주>

‘마을’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고 재미난 것을 발견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마을 1: 주로 시골에서, 여러 집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뜻 외에도, <마을 2: 이웃에 놀러 다니는 일>이라는 의미가 하나 더 있었다.

건물 입구에서부터 비밀번호를 눌러야만 하는, 지금의 삶의 구조에서 이웃이라는 단어는 생소하기만 하다. 이웃에 놀러 다니는 일도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하지만, ‘마을’에서는 여전히 ‘마을’을 간다. 마을 어르신들은 보행 보조기에 의지해 오늘도 마을 간다. 일회용 팩에 금방 삶은 감자 몇 알과 옥수수를 넣고 그들의 발걸음은 이웃에게로 향한다.

마을은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공간이다. 그저 하루의 시간을 보내거나 일터에서 돌아와 휴식을 삼는, 특별할 것 하나 없는 그런 공간일 수 있다. 하지만 그 공간에는 분명 무언가 존재한다. 개개인의 인생이 오랜 시간 겹겹이 쌓여 빚어낸 하나의 역사가 숨 쉰다. 모든 마을에는 시간이 빚어놓은 보물 같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기 마련이다.

전남 예술로 파견 사업을 통해 지난 5월 (주)반디에서 수행하는 ‘소멸 위기 마을 아카이빙’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 이 프로젝트의 대상지는 광양읍 익신마을이며, 나 이외에도 뜻이 같은 네 명의 예술인이 함께 진행한다.
 
우리는 마을의 숨은 이야기를 발굴해 각자의 예술작품에 녹여내고, 그것이 곧 하나의 기록물이 되도록 작업하기로 했다. 하지만 막연했다. 마을과 주민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시작조차 불가한 작업 아니던가. 우리는 익신마을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잘 알지 못했으며 가본 일도 처음이었다. 
 
사전 자료 조사에 기대어 지난 5월 익신마을로 향했다. 익신 마을은 도시와 농촌, 주거와 산업이 공존하는 곳으로, 현재 120여 세대가 거주하고 있는 꽤 규모 있는 마을이었다. 통일신라 말 도선국사가 익신마을 뒤쪽에 자리한 절 이름을 ‘일신사’라 하였고, 이를 계기로 마을 이름도 일신으로 불리다 향후 익신마을로 그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익신마을 입구
익신마을 입구

익신마을에 당도하는 길은 이렇다. 초행이라도 어렵지 않다. 광양읍 제철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마을 입구에 세워진 커다란 표지석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의할 점은 있다. 나는 익신 마을을 처음 방문하는 이들에게 주저 없이 당부한다. 
 “주차는 익신회관 주차장을 이용하라!” 
나는 마을을 방문한 첫날, 호기롭게 마을 안길로 차를 몰았다가 꽤 긴 시간 애를 먹었다. 포장된 길이였으며, 네이게이션의 친절한 목소리에만 집중한 탓이었다. 그렇게 막다른 골목에서 차가 끼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봉착했다. 우두커니 길 위에 멈춰 서 있었다.

길의 폭이 좁은 탓에 운전석 문도 열 수 없는 상황이었고, 도움을 청하기에 내 정확한 위치도 설명이 불가했다. 내 일생일대의 공포영화라 자부하는 ‘컨저링’을 볼 때도 등줄기에 땀은 흐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내 등은 축축하게 젖어갔다. 

익신마을 앞길
익신마을 안길

다행스럽게도 마을 할머니 한 분이 나를 발견 했고, 대화 없이도 금세 상황을 파악하셨다. 후진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고, 어렵사리 탈출에 성공했다. 물론 내 운전 실력이 서툰 탓도 있겠지만 익신마을 안길은 여러 갈래로 뻗은 좁은 골목 형태라 내비게이션의 지시가 함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난처한 첫 만남이었으나, 마을 안길은 걷기에 제격인 곳이다. 나의 동태를 흥미롭게 바라보는 고양이, 심심찮게 짖어대는 개들, 담장 밖으로 늘어뜨려진 이름 모를 식물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주는 주민도 만날 수 있다. 그 어디쯤 자리 잡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겨운 곳임이 틀림없다.

그렇게 마을 안길을 따라 계속 오르다 보면, (주)반디의 사무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곳은 마을의 전경은 물론이요, 건너편 익신 산단까지도 내려다보인다. 가히 마을의 전망대라 이름 붙일 만하다. (주)반디의 이현숙 대표에게 마을 안길에서 벌어진 에피소드를 들려주자, 고개를 끄덕였다. 곧 해결될 문제라고 했다. 현재 익신마을은 도시취약지역 생활 여건 개조사업을 추진 중인데, 마을 안길 개선도 포함됐다고 전했다.

그 말을 듣고는 어쩐지 아쉬웠고, 마음이 조급해졌다. 나를 골탕 먹이기는 했지만 몇 번 오르내리다 보니 어느새 정이 들어버린 길이었다. 발전은 어쩔 수 없이 소멸을 안고 간다. 변화 속에 과거의 흔적은 지워지고 어느새 잊히기 마련이다. 서둘러 이 길에 담긴 삶과 추억을 담아내고 싶어졌다.

(주)반디의 앞마당에서 마을을 한참 동안 내려다봤다. 내 눈에는 미로처럼 보이지만 어르신들에게는 그 어디보다 단순하고 친근한 이 길. 익신마을이 가진 보물로 안내하는 지도처럼 여겨졌다.
 
우리 팀이 현재 진행 중인 마을 아카이빙 프로젝트는 여러 고민을 하게 한다. 그 고민은 마을에 올 때마다 그 꼬리가 자라나는 탓에 쉽사리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몇 달의 활동으로 과연 일상이 묻어나는 아카이빙 작업을 해낼 수 있을까. 또한 프로젝트 종료 후 우리의 활동은 과연 주민들에게 무엇을 선사할 수 있는가.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바란다. 우리가 마을에서 빚어낸 예술작품이 어느 날 익신마을을 기억하는 하나의 자료가 되고, 또 하나의 마을 콘텐츠로 자리매김하길.
 
(주)반디와 강윤문(조각), 김성님(문인화), 김효민(국악), 유영우(대중 음악) 예술가들과 함께 익신마을에서 벌어지는 예사롭지 않은 행보와 그 과정에 묻어나는 염원을, <나의 익신마을 설명서>를 통해 기록‧연재하여 알리고자 한다.

비록 첫 시작은 “익신마을이 어디에요?”로 시작했고 길 위에 붙잡혀 있기도 했으나, 마을 어르신들께서 이정표 역할을 해주시니, 우리는 ‘마을’로 ‘마을’가는 것부터 시작하면 될 일이다. 

* 최난영 작가
 대학과 대학원에서 문예창작학을 전공했다. 단편소설 「울어요,제발」로 제2회 김승옥문학상 신인우수상을, 「쿠오바디스」로 제6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에서 단편부분 우수상을 수상했으며, 부산국제영화제 북투필름에 선정, 「행운을빌어요」로 고즈넉이엔티 메타버스 장르소설 공모전 단편소설부문을 수상했다. 산문집 「블라블라블라」가 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