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우리들 호소에 좀더 귀기울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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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우리들 호소에 좀더 귀기울였다면…"
  • 이성훈 기자
  • 승인 2021.07.09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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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면 탄치마을 주민들의 '한탄'과 '원망'
광양시의회 산건위, 사고 현장 조사 "전형적인 인재"

지난 6일 집중호우로 진상면 탄치마을 위 경사면이 무너져 내리면서 집과 창고 등 4채가 매몰되고 주민 1명이 숨졌다. 이 사고와 관련, 전남경찰청이 수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광양시의회 산업건설위원회(위원장 정민기)는 8일 오후 현장 조사를 실시했다.

산건위는 사고 현장에서 광양시로부터 사고 경위와 공사 진행상황 등에 대해 광양시로부터 설명을 듣고 현장 조사와 함께 마을회관에서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의회 현장 조사에는 진수화 광양시의회 의장과 광양 지역신문 기자들, 광양참여연대가 동행했다. 
  

진상면 탄치마을 산사태 현장. 포크레인이 복구에 한창이다.
복구 중인 진상면 탄치마을 산사태 현장

진상면 탄치마을 산사태가 발생한 장소는 백학동 마을과 진월로 가는 방향 삼거리 주변이다. 광양시에 따르면 사고가 발생한 부지는 주택 3채가 건설 예정인 곳으로 부지 바로 아래 60m  지점에는 탄치마을 주민들이 살고 있으며 주택과 마을회관 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 부지는 19년 4월부터 지난 1월까지 3420㎡ 규모의 토목 공사를 진행 중이다. 8일 오후 사고 현장을 가보니 출입 금지를 알리는 노란색 통제선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부지 바닥에 쌓인 흙은 물기를 가득 머금어 장화가 빠져 나올 수 없을 만큼 질퍽했다.  

경사면이 무너진 곳에서 아래 마을을 바라보니 수십미터 길이의 파란색 비닐도포를 덮어 경사면이 더 이상 무너지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놓았다. 가옥이 파손된 현장에는 대형 포크레인 두 대가 움직이며 복구에 한창이었다. 하지만 이날 오후 진상면에는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정도로 폭우가 쏟아지면서 복구 작업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탄치마을 주민들, 19년부터 수차례 민원 제기

주민들은 공사 초기부터 산사태를 우려하면서 공사 진행 과정에서 흙과 돌이 떨어진다는 민원을 광양시에 수차례 제기했다. 광양시에 따르면 탄치마을 주민들은 19년부터 세차례 민원을 제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9년 11월 8일 주민들은 공사현장이 안전시설 미설치로 인한 낙성 및 토사유실 등이 우려된다며 민원을 제기했다. 이에 시는 낙석 방지 등을 위한 현장 안전을 조치토록 보완할 것을 수허가자에게 통보했다.

마을회관에서 주민들이 이번 사고에 대해 의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마을회관에서 주민들이 이번 사고에 대해 의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주민들은 우기시 산사태 발생할 경우 주택에 피해발생이 우려된다며 조치해줄 것을 1차 건의했다. 시는 이에 △공사 부지내에서 발생하는 우수를 하부 경사지로 흐르지 않고 인근 배수로로 빠지도록 계획할 것 △산사태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부지 경계로부터 일정 거리를 이격해 공사 진행 △공사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관리를 철저히 하도록 수허가자에게 요청했다.   

올해 2월 15일, 주민들은 2차건의서를 시에 제출했다. 주민들은 지질검사서, 환경영향평가서, 구조서례 내용증명서를 제출해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건축법, 자연재해대책법, 환경영향평가서법 등에 평가 기준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주민들의 요구는 모두 무산됐다. 

이후 지난 6월3일 주민들은 3차 건의서를 제출했다. 건의 내용은 집 뒷산 언덕에서 비가 오면 토사유출로 위험 발생을 제기했다. 시는 그러나 사업부지 경계로부터 일정거리 이격해 부지를 조성했다면서 허가지로 인한 토사 유출 영향은 적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회신했다. 결국 3차 건의서 한 달 후 경사면은 집중호우로 무너졌고 재산피해는 물론, 인명피해까지 이어졌다.

“쿵쾅거리는 소리와 함께 이미 아수라장”

서병호 탄치이장은 이날 사고 당시 상황을 상세히 설명했다. 서 이장은 “6일 새벽 쿵쾅거리는 소리가 날 때 시간을 보니 정확히 5시52분이었다”며 “천둥 번개 소리는 나는데 하늘에서 번쩍이는 번개 불빛이 보이지 않아 이상하다 싶어 밖으로 나와 보니 심각한 상황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병호 탄치이장이 사고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병호 탄치이장이 사고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어 “주민들이 놀라 뛰쳐나와 있었고, 마을 주변을 살펴보니 집 두채가 이미 무너지는 등 아수라장이었다”며 “놀라서 밖으로 나온 주민들이 119와 112에 신고좀 해달라며 애원하고 쓸려내려온 토사로 인해 마을이 완전히 뒤집어졌다”고 설명했다.

서병호 이장은 공사업자와 광양시가 주민들의 이야기만 제대로 들었다면 이번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광양시 답변서를 보니 토사 유출 위험도 적고 공사업자는 각종 조사 요구에 기준에 충족되지 않는다며 응하지 않았다”며 “이런 답변을 들었을 때 정말 미치도록 화가 났다”고 성토했다.  

마을회관에 모인 주민들도 의원들에게 “우리들 이야기를 좀더 듣고 반영했다면 예방할 수 있지 않았겠느냐”며 광양시와 공사업자의 안일한 대처에 적지 않은 실망과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의원들 “전형적인 인재…안일한 대응 안타깝다”

현장을 살펴보고 마을회관에서 주민들의 의견을 들은 의원들은 어떤 입장일까. 의원들은 이번 사고가 안일한 대처에서 발생한 전형적인 인재라고 주장했다.  

백성호 의원은 “현장을 둘러보고 주민들 이야기를 들어본 결과, 종합적으로 판단해보면 인재라고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백 의원은 “기반 조성 공사를 할 때 좋은 흙은 파서 외부로 반출하고 다른 흙으로 매립을 하다 보니 원래 지반이 약해진 것 같다”며 “결국 집중호우로 고인 물들이 경사면쪽으로 한꺼번에 쏠린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백 의원은 “결과적으로 주민들이 우려한 부분들이 사고로 이어진 것 아니냐”며 “안일한 대응이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광양시의회 산건위원들이 광양시로부터 공사 과정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광양시의회 산건위원들이 광양시로부터 공사 과정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박노신 의원은 “상식적인 잣대로 봤을 때 옹기종기 모여 사는 곳 바로 위에 공사를 하고 있다면 주민들이 불안한 것은 당연하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공사업자나 관리 감독하는 광양시가 제대로 점검해야 하는데 주민들이 수차례 민원을 제기해도 대응을 안일하게 한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시와 공사업자가 법적 기준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제대로 조치를 취했다면 피해는 더 적었을 것 같은데 너무 방심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 의원은 “다른 지역도 이와 유사한 곳이 있다”면서 “이번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고 시는 재난관리에 더욱더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민기 산건위원장은 “주민들이 제기한 민원에 대해 제대로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 이번 사태의 원인 아니냐”며 “전형적인 인재라고 봐야 하고, 주민들의 건의를 지나치게 법과 규정을 적용, 소극적인 대응으로 나섰다”고 비판했다.  

정 위원장은 “건의서 답변 내용을 보면 1, 2차는 문제가 있을 것으로 조치를 요구하고 3차 답변은 토사유출 영향이 적을 것으로 판단하는 등 사고가 발생하고 보니 시의 답변에 앞뒤가 안맞는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장마철에 앞서 주민들의 얘기에 공사중지 명령을 내리고 배수부분 등 전반적인 안전점검을 했었다면 피해를 최소활 할수 있었을 것”이라며 “법적인 기준만 고수하는 행정 시스템이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전남경찰, 광양시청·공사 현장 등 압수수색

이번 사고는 결국 경찰 수사로 이어졌다. 전남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 7일 광양시청, 공사 현장 사무실과 건설관계자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경찰은 산사태 피해를 입은 주택과 60여m 거리에서 진행한 토목 공사와 연관성을 두고 불법이 있었는지를 다각도로 수사하고 있다. 또한 광양시로부터 공사설계도면, 축대설계도면, 허가 관련 서류 등을 제출 받았고, 조만간 건설업체 대표를 소환해 조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지난 6일 탄치마을 수해피해 현장
지난 6일 탄치마을 수해피해 현장

김평식 광양참여연대 상임대표는 “현장을 자세히 살펴보고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광양시의 관리감독 부실과 현장의 안일한 대응이 빚어낸 참사”라며 “안전불감증이 여전히 우리 주위에 만연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다른 지역도 재해위험에 노출된 곳이 많을 것”이라며 “법과 제도 탓만 하지 말고 현장에 맞게 현실적인 안전 최우선 정책이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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