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책 『죄수와 검사 : 죄수들이 쓴 공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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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책 『죄수와 검사 : 죄수들이 쓴 공소장』 
  • 이성훈 기자
  • 승인 2021.05.10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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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조회 천만 돌파 화제작
뉴스타파, 책으로 출간

전직 검사와 증권사 대표 구속, 한명숙 사건 재조명 등 숱한 화제를 뿌리며 검찰개혁이라는 의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뉴스타파 <죄수와 검사> 시리즈를 책으로 출간했다.

2019년 8월부터 2020년 11월까지 세 시즌에 걸친 <죄수와 검사> 연속 보도는 유튜브 누적 조회수 1020만 회, 댓글 3만4천개를 기록했고 MBC와 공동 기획으로 <PD수첩>에 2회에 걸쳐 방영되는 등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도서 <죄수와 검사 : 죄수들이 쓴 공소장>(심인보·김경래 지음/도서출판 뉴스타파/1만8천원/378쪽)은 기존의 보도 내용을 단순히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체적인 서사를 다시 구성하고 그에 맞춰 모든 문장을 새로 썼다. 기사에 담아내지 못한 민감한 내용과 뒷얘기를 추가하고 현재 의미도 새롭게 부여했다.

저널리즘 문체 특유의 빠른 전개와 현장을 보는 듯한 생생한 묘사는 책에 담긴 묵직한 메시지를 넘어 스릴러 영화 같은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저자는 뉴스타파 김경래, 심인보 기자다. 지난 2016년 삼성 이건희 회장의 성매매 영상을 함께 보도했던 두 기자는  <죄수와 검사> 취재도 함께했다.

죄수의 말을 무기로 검찰과 싸우다

이 책은 두 저자가 지난 2년여 동안 검사들과 벌인 전쟁을 기록한 일종의 전기(戰記)다. <죄수와 검사> 보도는 수십 년 이상 굳건히 다져진 검찰 기득권의 철옹성을 조금씩 무너뜨렸다. 전쟁에서 저자들이 사용한 무기는 죄수들의 말이었다.

검찰의 수사 과정과 치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죄수들의 말, 그러나 과거에는 죄수라는 이유로 신뢰받지 못했던 죄수들의 말을 ‘검증’이라는 숫돌로 벼려 무기삼은 것이다. 검증을 거친 죄수들의 말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검찰의 도덕성과 정당성에 치명상을 입혔다. 그 결과 죄수와 검사의 자리가 뒤바뀌게 되었다. 죄를 묻는 검사의 자리에 죄수가, 죄를 숨겨야 하는 죄수의 자리에 검사가 놓이게 된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주체’이기만 했던 검사들도 때로 ‘객체’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반대로 수십 년 동안 ‘객체’이기만 했던 죄수들도 마침내 ‘주체’가 됨으로써 서로 자리를 바꿀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어쩌면 뉴스타파 <죄수와 검사>보도가 불러일으킨 가장 의미심장한 변화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죄수와 검사>는 죄수들이 뉴스타파를 통해 써내려 간, 검사들에 대한 공소장이다.” (7쪽)

똘똘 뭉친 ‘불멸의 신성가족’

죄수들의 첫 번째 증언, 검사의 자기 식구 봐주기다. 이 책에는 김형준 부장검사의 고교 동창 스폰서 사건에서 검찰이 검사가 받은 뇌물을 어떻게 축소하고 성매매 혐의를 어떻게 덮었는지, 전말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 사건에 검사 출신 전관 변호사가 어떻게 개입했는지, 그 대가로 전관 변호사가 누린 막대한 부는 어떻게 형성이 되었는지에 대한 치밀한 취재도 중요한 포인트다.

“이들 ‘범 검찰가족’은 스스로를 법 위의 존재라고 여기며 언론에 의해 ‘식구’의 비위가 폭로되어도 일단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틴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수사를 하게 되면 수사 전반에 미치는 자신들의 영향력을 이용해 ‘식구’를 치밀하고 세심하게 배려한다.” (72쪽)

“검찰의 향응 액수 계산법은, 검사가 먼저 일어나면 이걸 감안해  n분의 일을 하고, 다른 동석자가 먼저 일어나면 그런 계산 없이 단순 n분의 일을 하는 것이다. 복잡해 보이지만 하나의 원칙만 기억하면 된다. 검찰 가족에게 유리한 방식을 택한다.” (74쪽)

죄수를 이용한 불법 수사, 특수부 검사의 민낯

이 책에 일관되게 나오는 주제는 검찰의 꽃이라고 불리는 특수부 검사들이 죄수를 수사에 활용하는 불법 수사 관행이다. 취재를 통해 밝혀진 바, 특수부 검사들은 죄수에게 특혜를 베풀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죄수를 수사에 활용한다.

노동력을 착취하기도 하고 죄수의 전문성을 이용해 정보를 빼낸다. 죄수가 가진 돈을 활용해 다른 죄수들의 정보를 사기도 하고 심한 경우에는 거짓 증언을 시키기도 한다. 이 책에는 특수부 검사들이 죄수를 활용해 벌인 다양한 불법 사례가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 불법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한다.

“검사실에 출정을 나오려면 사건을 사서 검사님한테 드려아지 검사님 실적이 올라가잖아요. 그래서 사건을 사요. 작게는 몇 백만 원부터 크게는 몇 천만 원 이상까지. 사건을 사서 선물을 드리면.... 거기 (검사실) 나오면 점심시간에는 싹 다 비워줘서 거기서 드시고 싶은 거 뭐 이런 거는 다 드셨어요” - 죄수 오 씨의 애인 A 씨와의 인터뷰 중 (219쪽)

전직 검사와 저축은행 대표를 구속하다

검찰 인맥과 막강한 금력의 결합으로 수많은 개미들을 짓밟으며 금융시장에서 부를 일궈낸 검사 출신 전관 변호사 박수종과 저축은행 대표 유준원 ‘콤비’는 이 책의 주요 등장인물 가운데 하나다. 두 사람은 각자의 장기를 이용해 서로 도우며 자본시장의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했지만 검찰은 이들을 전혀 수사하지 않았다.

이들에게 피해를 당한 죄수들의 증언과 저자들의 취재로 마침내 불법이 드러났고 <죄수와 검사> 보도 이후 구속됐다. 저자들은 이들의 불법 행각과 검찰의 봐주기 수사, 그리고  검찰 구석구석에 뻗어 있는 네트워크를  집요하게 추적했다.  

“서울 남부지검이 법조와 금융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거대한 시장이라면, 박수종 변호사는 법조 쪽에서 거기로 들어가는 문이고 유준원 회장은 금융 쪽에서 들어가는 문이라고 생각했다. // 유준원에게는 자본이라는 무기가, 박수종에게는 검사들과의 네트워크라는 무기가 있었다. 두 사람이 단기간에 쌓아올린 막대한 부는 두 무기의 결합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103쪽, 137쪽)

한명숙 사건, 다시 빛을 비추다

<죄수와 검사> 연속 보도에서 가장 큰 화제가 되었던 것은 단연 한명숙 사건을 재조명한 부분이다. 검찰 조사에서는 뇌물을 줬다고 진술했다가 법정에서 돌연 뇌물을 준 적이 없다고 번복했던 핵심 증인 한만호, 저자들은 한만호의 행적을 추적하던 과정에 한만호의 비망록을 발굴했다. 저자들이 발굴한 한만호의 비망록은 지난해 5월 뉴스타파가 보도하면서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한만호는 검찰의 수사 방식을 두고 ‘단추 하나 가지고 양복도 만들고 바바리도 만들고 코트도 만들었다’라고 법정에서 표현했다.//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은 본질적으로 퍼즐을 맞추는 것과 유사하다. 범죄를 수사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검찰의 방식은 조금 다르다. 수백 개의 퍼즐 조각 중 몇 개를 놓고 나머지는 (찾는 게 아니라) 다른 종이를 오려 붙이는 방식일 수도 있다. 가지고 있는, 혹은 찾아낸 퍼즐 조각이 얼마 되지 않을 때, 특히 핵심조각이 없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 한명숙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범죄 사실이라고 할 수 있는 돈 전달 일시를 검찰이 특정하지 못한 것도 이런 방식의 수사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282~283쪽)

더 중요한 점은 저자들의 취재로 특수부 검사들의 모해위증교사 의혹이 드러난 것이다. 검사가 한만호의 법정 진술을 탄핵하기 위해 동료 죄수들을 섭외한 뒤 위증을 하도록 교육했다는 의혹이다. 저자들이 취재한 검사의 모해위증교사 의혹은 지난해 한국 사회를 뒤흔든 사건 중 하나였다. 모해위증교사 의혹이 단순한 의혹으로 끝나지 않고 검찰의 수사와 법무부 감찰로까지 이어진 것은 저자들의 치밀하고 집요한 취재 때문이었다.  

“보통은 여기서 취재가 마무리 된다. 죄수 H의 존재를 확인했고 (물론 이 절차까지 생략하는 언론사도 많다.) 편지를 확보했다. 그럼 기사를 쓰고 폭로하면 된다. 대략 아귀가 맞으면 지를 수 있다.

폭로 내용이 사실이 아니면? H가 책임지면 된다. 폭로 내용이 사실이면? 언론사는 특종을 하는 거지. 베팅만 하면 된다. 이기면 크게 따고, 지면 본전이다. 반면 우리의 취재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H의 말과 글을 검증한다. 손에 잡히는 물증을 확보할 때까지 확인한다. 그저 습관일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 습관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3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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